2008년 10월 20일
청사포 입성.

청사포로 내려가는 길. 이사간 동네에서는 주민의 숙원이 집값 상승도 아니요 국제고 설립도 아닌 '풍어제' 다. 주민의 일원이 된 것을 기념하여 역광 앞에서 꿋꿋한 브이를 그리고 있는 올아버니의 름름한 자태.

물이 좋다. 출퇴근 때마다 보게 될 풍경이다.

성철스님 절이라고 엄마가 거듭 강조하는 해운정사. [스님들이 풍수지리를 제대로 꿰고 있는데 성철같은 큰 스님네 절이 있는걸로 봐서 동네가 터가 좋고 기타등등]

한가로운 어촌 마을과 횟집-토착민들-뒤켠에는 신식 빌라-이주민들-가 들어서있다. 빨간 자동차 안쪽의 창고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바로 옆 밭에서 뽑아온 쪽파를 뭉탱이로 쌓아놓고 다듬어 판매하고 있다. 앞으로 식탁에 오를 대부분의 농산물은 건물 1층에서 그때그때 사먹으면 된다. 스무살때 독립해 객지로 나간 후로 반지하, 옥탑, 원룸등의 주거 생활을 8년간. 이사는 세어보니 9번 했다. [이제 적어도 몇년간은 이사할 일 없겠지]라며 이삿짐을 풀어놓고 깃븜의 와인을 마셨다 흐흑...

[1시간만에 이사 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믿고 있었다. 그랬더니 정말 그렇게 해버리셨다. 만능 아빠...

쪽방생활에 익숙한 여캐에게, 주방과 화장대는 삶의 질 향상의 바로미터다. 주방이 생겨 너무나 깃븐 나머지 주말내내 부엌을 떠나지 않고 밥 하고 밥 먹고 일기 쓰고 담배 피고 옷 입고 옷 벗고 양치하고-_- 등등 생활전반을 다 주방에서 해결했다..

처음 서울 올라갔을 때 책만 한 트럭이었는데 만화책이 많았다. 김진, 강경옥, 신일숙, 나예리, 박희정, 오경아, 황미나 이 사람들 컬렉션이 다 있었어.. 심지어 1815랑 신들의 황혼이랑 레모네이드처럼이랑 현재진행형이랑 이 카드입니까..라비헴 폴리스 다 초판으로 있었다규.. 김진태 컬렉션도 작난 아니었는데 하드보일드 뉴 패밀리, 굿모닝 보스.. 황가두 등 김진태 작품세계의 캐릭터 원형이 모조리 등장하는 ㅠㅠ 그립워라. 이 모든게 여행 나가느라 방을 뺄 때마다 다 나눠주든지 버리고 갔어서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새삼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_-;

광란의 인테리어가 한 달간 지속될 예정. 수고 많으셨습니다.
옥상이 대박인데 사진을 못 찍었다. 이제 빨래를 볕에다 말릴 수 있어.. 태양초를 말려서 김치를 담가 먹을 수도 있능거햐..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달맞이길(달맞이고개) 아래에 있는 작은 포구이다. 원래의 한자명은 뱀‘사(蛇)’자가 들어간 청사포(靑蛇浦)였으나 언제부터인가 푸른 모래라는 뜻의 청사포(靑沙浦)로 바뀌었다. 난류와 한류가 섞이는 동해의 남쪽 끝·남해의 동쪽 끝에 있어, 옛날부터 물고기가 풍부하고 질 좋은 횟감이 많이 잡혔다. 포구의 방파제는 늘 낚시꾼들로 붐비고, 주변엔 횟집과 붕장어구이집·숯불조개구이촌이 즐비하다. 망부송(亡婦松)과 해마루라는 정자도 유명하다.

언젠가 회사워크샵으로 장산에 올라갔을때 들었던 생각인데.지금이야 비행기도 타고 구글어스도 있고 하지만 지도를 제작했던 최초의 인간들은 landscape를 인지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것 같다. 전체속에 있다는 관점과 프랙탈.

문제의 수민이네.ㅋㅋ 가본적은 없지만 산책길에 지나다니면서 느낌으론 못해도 월 5억은 찍을 것 같던데. 지역적 한계를 장점으로 안고 별도의 브랜딩 없이도 대박. 물길과 철길이 만나는 곳의 풍수가 저집 사장의 사주 오행과 필히 합이 맞는 구석이 있을 듯. 조만간 시식예정
인터뷰 갔을때 구정회 이사장님이 부산의 헤이리를 만들고 싶다고 터를 추천해달라는 말에 청사포가 딱 떠올랐었는데. 막상 지금 보니 청사포는 그냥 이대로 시골 느낌으로 남는게 나을 것도 같다. 흠 개발이니 집값이니 이런 주제로 생각하게 될 줄은..-_-
이사후 오늘 첫 출근은 장산역까지 워킹 디스턴스로다가. 운동되고 좋다.
청사포 성인 가요 모음.
http://mus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music&sm=tab_nmr&query=%C3%BB%BB%E7%C6%F7
| 푸른 뱀의 전설, 청사포 | |||||||
| 망부송의 전설이 서린 해운대 끝자락의 어촌 | |||||||
| 2006-10-04 13:21:52 | |||||||
청사포. 푸를 靑에 뱀 沙 혹은 모래 沙, 그리고 갯가 浦. ‘푸른 뱀의 포구’라는 뜻을 지닌 청사포는 해운대 해수욕장과 송정 해수욕장의 중간 지점에 있는 어촌이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꼬리에 붙어있는 미포에서 동해남부선 철로를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청사포가 나오고, 다시 송정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면 구덕포라는 한적한 어촌이 나온다. 결국 해운대와 송정 사이에는 세 개의 포구가 해안가를 따라 나란히 있는 셈인데, 이 세 마을은 동해안 남단에 존재하는 작은 포구들이다. 세 마을에 나란히 놓여 있는 동해남부선은 정동진과 강릉까지 연결되며,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짙푸른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 세 마을 중에서 역사가 깊고, 가장 잘 알려진 곳이 바로 “청사포”이다. 청사포는 그 이름만으로도 곱디고운 해변과 푸른 모래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청사포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일출은 보는 이의 넋을 앗아갈 정도로 아름답다. 일출도 붉은 해가 맨 몸을 활짝 드러내는 것보다는 구름 사이로 아련한 빛이 보이는 일출이 더 볼만하다. 이 청사포 마을의 남쪽 끝에 가면 수령 300년을 자랑하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두 줄기를 이룬 채 하늘로 웅장하게 뻗어 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중앙에 당산집이 한 채 있는데, 이 나무와 당산에는 결말이 다른 두 개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전설 1은 마을 이름의 유래와 관계가 있으며, 전설 2는 마을의 수호신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전설 1 : 청사포 지명의 유래 예전 이 마을에는 금실이 좋은 신혼부부가 있었다. 아내는 어여쁜 용모에 예의바르고 살림도 잘 했으며 성은 김씨라고 했다. 남편 또한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호남형의 사람이었으며 매사에 성실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아침부터 내리는 찬이슬이 심상치 않아 아내는 남편더러 고기잡이를 하루 쉬라고 했다. 그러나 젊고 힘센 남편은 걱정하는 아내를 다독이며 바다로 나가고 말았다. 아내는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 후, 노을빛이 서녘 바다를 붉게 물들일 때, 늘 그렇듯이 바위에서 남편의 배를 기다렸다.
그러나 수평선 위의 핏빛 석양이 사라지고 옻 색으로 바다가 물들 때까지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김씨 여인은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렸으나 남편의 배는 끝내 오지 않았다. 김씨 여인은 그날부터 매일 바위 위에 서서 남편의 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고, 소나무가 자라는 것을 바라보며 언젠가 남편이 무사히 도착하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김씨 여인은 점점 말라갔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두 눈가에는 언제나 핏빛 석양을 닮은 색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애타는 기다림을 말렸으나 김씨 여인은 남편의 죽음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김씨 여인의 정성이 심연의 용궁에 고스란히 가 닿았던가. 마침내 동해 용왕이 자신의 차사로서 푸른 뱀을 여인에게 보내게 되었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부채처럼 아련하게 퍼지던 어느 날, 김씨 여인은 푸른 뱀의 인도를 받아 용궁에 도착하였고 너무나도 그리워하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마을 이름을 푸른 뱀의 포구, 즉 청사포라고 하게 되었으며 당시 김씨 여인이 심은 나무를 망부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설2 : 김씨 여인이 마을의 수호신이 된 이유 전반부는 전설 1과 비슷하지만 결말이 조금 다르다. 즉, 남편을 애타게 그리워하던 김씨 여인은 좀 더 멀리 보기 위해 마을 남쪽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죽은 남편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마침내 김씨 여인은 슬픔에 겨워 식음을 전폐하며 남편을 그리워 하다가 바닷가 바위 위에서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남편을 그리워 하며 죽은 김씨 여인을 가상하게 여겼고, 마침내는 골맥이 할매로 승격시켜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여인이 먼 곳을 보기 위해 올라간 소나무를 망부송이라고 했으며, 매일 올라가던 바위를 망부석이라고 불렀다. 지금 있는 당산은 골맥이 김씨 할매로 승격된 그 여인을 모신 사당인 것이다. 원래 골맥이는 ‘마을을 막는다’라는 뜻인데 보통 마을에 처음으로 들어온 사람을 수호신으로 삼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 개척한 분을 마을의 어른으로 공경하여 ´골맥이 할매´, ´골맥이 할배´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김씨 여인은 열녀적 성격의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은 것은 다른 동해안 마을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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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10/20 11:26 | 감당의 스티치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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