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




휴무를 낸 토요일 이른 아침,







사직운동장으로 가야한다고 며칠 전부터 강조하던 신랑은 그러나, 김해 공항으로 나를 납치하였다. 여기가 사직이냐며 아직도 제대로 낚였음을 깨닫지 못하는 나의 손을 이끌고 제주행 비행기 탑승 수속을 밟으며 의기양양하던 신랑의 미소 ^^ 제주도 가보고 싶다고 올해 아주 노래를 불렀는데 프로포즈 장소로 택하여 수개월 전부터 [최상의] 코스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지난 몇 달간 열심히 쪼으며 승질을 부려댔으니;
일단 제주 공항에 내린 시각은 11시. 라마다 호텔 앞의 전복집으로 가서 전복이 전복이 전복이 아주 그냥 끝나는 전복돌솥밥에 전복뚝배기 브런치를 들고 일정이 시작되었다. 소, 손가락 세 개 만한 화, 활전복 여섯 마리가 탕에 누워있었어............ 전복을 그렇게 많이 먹어본 것도 처음이었거니와... 다 먹고 나니 전복의 하이가 찾아오는 진기한 경험을....



신랑의 컨셉은 오늘 어딜가서 뭘 하든 아무것도 묻지 말고 따지지도 말고 이끄는 대로 오라, 였다. 표선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이 때만해도 표선해수욕장에 있는 도미토리형 게스트하우스에 숙소 예약을 해둔 걸로만 또 한번 신나게 낚이고 있는 참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자연환경과 목장, 이질적인 풀과 나무들이 너무도 음기 강하고 신선하여 점점 더 기분이 좋아지는 참이었다. 





제주도에는 세 가지가 많다고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람. 하루 종일 기류를 통한 헤드뱅잉효과를 시전하면서 다녔는데 신랑의 얼굴을 휘감아버린 이 갈기 사진은 프로포즈 받는 날 찍은 사진 치고는 레전드로 남을 듯한 예감이 든다.



....표선에 내려 도착한 뭔가 굉장히 내가 본 것중에는 정말 최고 좋아보이는 호텔 1층의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게 코스에 있다고 하길래 순순히 따라갔는데 1박 2일 일정에 커피나 마시면서 시간 죽이는게 아까워 얼른 일어나자고 재촉하는 나를 이끌고 보무도 당당하게 예약번호를 부르고 디럭스에 체크인을 하시는 신랑님. ㅠ_ㅠ  이름하여 해비치 호텔이었다. 현대에서 만들었고 제주 최초의 6성 호텔. 이 뷰를 보라.





뭐 이런 부대시설과 전용 비치의 풍경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데 대략 바닷가에 집을 사서 살림을 살고 있는 우리이지만 참. 좋긴 좋더라능.





평생에 한 번 하는 프로포즈를, 나 정도 되는 사람이, 허접하게 할 줄 알았더냐, 갈 하시는, 신랑님. 우리, 햇수로 6년 만났고, 만나고 여러 상황들로 무척 힘든 시간 보냈고, 그 보상이자 서로에 대한 다짐으로 반년간 배낭여행 다녀왔고, 입국하고 바로 군대 보냈고, 나 너무 힘들어서 다시 인도에 나갔다 들어오는 2년간 죽도록 힘들었고, 제대하고 월남하여 무일푼에서 사회적으로 자리 잡느라고 또 한 2년간 고생했고.. 6년간 대략 30년 어치의 극적인 희로애락을 겪어낸 우리 커플에게 이 프로포즈가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가지는 일인지 신랑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다 공감이 되어서 기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였다. 특히 마음과 생활이 조로한 채로 만나서 빛나는 사랑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각자의 고독스럽고 고통스런 유배 시기를 처절히 거쳐 제대한지 2년만에 급격히 생활을 일으키느라 나는 나대로, 신랑은 신랑대로 사회 생활에 매달린 지난 2년의 에너지와 시간들. 앞으로 우리가 함께 보낼 시간과 기회들 앞에 비옥한 거름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안다. 우리가 얼마나 수고하였는지. 앞으로 우리가 꿈꾸는 것들에 대한 자격이 우리에겐 있다.





이 호텔의 라운지를 보노라면 건축이 자연을 밟고 들어선 것이 아니라 건축이 자연 사이에 파티션을 치고 살짝 세 들어왔다는 그런 컨셉이랄까. 귀뚜라미가 우는 라운지 카페의 낭만은 물론이요 아이비를 길러 층층이 늘어뜨려 후텁지근한 아열대의 로망을 재현한 그 느낌이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어떻게든 객실수를 늘려 투숙객을 꾸역꾸역 받아 넣으려는 다른 호텔들관 무척 달랐는데, 라운지가 뻥-하고 비어 통채로 하늘과 소통하고 있다. 거대한 온실이랄까.




우리가 투숙한 2514 앞에서.^^ 어딜 가야한다며 캐주얼에서 수트로 복장을 체인지하라는 명에 고대로 따랐다.





하여 도착한 곳은, 섭지코지! 올인하우스와 꽃남 촬영지로 관광객이 버글대는 이 곳에 오빠답지 않게 왜 데려왔는가 했는데 ㅎㅎㅎㅎ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방아깨비(!)와 소금쟁이(!)를 만날 수 있었던 이 놀라운 청정 지역에서 인증사진 한 컷.






섭지코지 일대를 모두 매입해버린 재력의 한화그룹에서 제주에 지은 피닉스 아일랜드는, 건축계의 거장 안도 타다오의 우월하고 명석한 감각이 곳곳에 묻어있어 무척 모던한 방식으로 자연을 숭앙하는 건축의 대견함을 구현해 놓은 곳이다. 절묘하게 자르고 가둔 바람과, 빛과, 소리가 시간을 고이게 하는 곳, 지니어스 로사이의 라비린스에 가까운 전시실에서 한 컷. 무식하게 자본 끌어당겨 최고로 높게 최고로 넓게 최고로 비싸게 뭐 이런 기록갱신에만 목적을 두고 지어대는, 분양 달성 및 건설경기 진작에'만' 일익을 담당하는 집 근처의 건축물들 땜에 투기건축 즐, 모드였는데. 환경과 뷰의 역학을 이해하는 건축의 철학과 명석함을 최초로 인정하게 된 경험이기도 했다.





지니어스 로사이를 빠져나오는 길.





그리고 이곳이 내가 섭지코지에서 프로포즈를 받은 곳이다. 안도 타다오가, 성산일출봉을 눈앞에 두고 지어 올린 신전 간지의 레스토랑, 민트.





아망떼 코스를 주문하고 웨이팅하는 동안 나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신랑의 저 포커 페이스가 언제 어디에서 반지를 꺼내어 들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 계속 꿈꾸는 기분으로 다물어지지 않는 미소를 머금은 입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망떼 코스는 맛과 구성에 있어 최고였고,(레몬그라스 셔벗은 정말 잊지 못할 것.) 메인 디쉬가 나오기 전에 잠깐 나가 선 테라스에는 일몰 뒤로 진홍빛 선연한 보름달이 수평선 위로 고요히 떠오르고 있었다. 집어등을 밝히고 점점이 조업을 하고 있는 먼 바다의 어선들을 지그시 응시하며 살짝 추워지는 밤바람에 신랑의 뒤로 바짝 붙어서는데, 신랑의 배를 감은 내 왼손 약지로 스르륵하고 '그것'이 제 자리를 찾아 들어왔다. 곧이어 "윤정아,우리 결혼하자. 평생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자.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 응"하고 두 번 대답했다. 정말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이었다.





근데 이 사진은 왜 갑자기 쩔고 있냐면,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점점 기분을 고조시키고 있는데, 신랑이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미리 준비해둔 와인과 케잌에 넋이 나가 테라스로 나가려던 내가 너무 흥분한-_-나머지 방충망을 열지도 않고 발걸음을 냅다디뎌 다 찢어놓았... 아 정말 힘 왤케 쎄................ 뭐 팔씨름 나한테 이기는 여자가 없긔.......... 이제는 6성 호텔 기물파손.....




어쨌거나 내일의 해가 떴다. 눈 뜨자마자 룸 차지에 붙어있는 조식 부페를 쓸어버리려 쿨쿨거리며 두 손 맞잡고 내려갔다. 맛있었다. 제주도는 아침과 저녁의 느낌이 참 달랐다. 둘 다 매력적이었다. 다음 기회에 길게 와서 렌트카 끌고 유랑해보리라.





이처럼 감쪽같고 치밀하게 납치하느라 반지 준비하느라 눈치없이 휴무 안내고 툭하면 지방 출장가는 나땜 일정 잡느라 몇 달간 고생이 많았을 신랑에게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이제 우리 결혼까지 백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신랑이 섭지코지에서 완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드를 잡아주면서 끼워준 8부 다이아에는 벌써 기스가 두 개 났다. 나란 여자 이런 여자. 힘 세고 무깍기한 여자-_-;;; 나는 예술이 아니라 경영이나 스포츠를 배웠어야 했다. 나이가 들수록 느낀다-_-


일생의 과업 중 하나를 달성한 울 신랑,

부산 도착하자마자 뻗었다. 하하. ㅜ_ㅜ

나는 몸상태로는 진작 뻗었어야 하나 못 뻗겠다.

그런 기분이 있다.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행복합니다. 하하.




by wala | 2009/09/06 19:47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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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紫血月華 at 2009/09/06 23:26
즐겁게 읽으면서 기물파손부터는 왤케 웃기기도 할까요;;;
여하튼 여자에게는 행복한 일들을 시작하셨군요 :)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
Commented by wala at 2009/09/08 12:49
호텔에서 전화올까봐 가슴 졸이고 있었는데 전화 안오네요..ㅎ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sunf at 2009/09/09 11:30
완전.....여러가지 의미로 눈물나는 블로깅ㅠㅠ
Commented by wala at 2009/09/13 01:16
전 이게 벌써 저번주의 에피소드라는 것에 눈물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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