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23일
언제쯤 되야 먹고 사는 문제 바깥에서 놀 수 있으려나
가상과 정신의 소비재인 매체와 인터넷이 인간의 생활과 드라마를 대체하고 재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삶에 개입하고 구조를 휘어잡는 실례들에 관해.
좀 공기도 좋은 곳이고 해서 산으로 가보지 말입니다.
몸의 정치는 성별을 떠나 이미 인간의 삶과 사고에 너무나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성별/연령대별로 공히 막중한 사회적 압박을 사회적인 방식으로 개선해낼 방법과 의지가 요원하여 부팅과 함께 익명의 성대결 배틀로 소모해내는 지극히 우리나라스러운 접근방식보다는 유행어와 그것이 조성되는 구조와 그것을 인식하는 집단의식에 더 흥미가 있다.
언어라는 건 시대를 겪는 공유수요자들의 사고를 반영하는데 공인 과정에 있어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 과거에는 중앙 매체에서 일반 대중으로 수직하향 전이되는 수순이었다면, 인터넷이 보급되고 계급장 뗀 실시간 상호 피드백이 가능해진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수요자들이 각자의 게토에서 주도적으로 신조 합성어를 만들어 유희하는 것이 어느 정도 서브 트렌드가 되면 미디어 업자들이 그것을 채집하여 메인 트렌드로 인증하는 식의 역순이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비난과 권력의 중심에 있는 미디어. 클릭수만큼 광고가 붙는, 집필이 곧 영업인 미디어 업자들의 시장중심적인 보도방식은 그들 스스로 도덕성까지 개론해가며 자정할 만한 것은 못된다. 자극적인 카피라이팅은 그쪽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능력이다. 매체에 광고가 안 붙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결과 어떤 식으로 개피를 보게 되는가에는 하나의 귀결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옳은 것은 바른 것이 아니라 주목받는 것, 이슈의 전시장이 되는 것, 곧 살아남는 것이다.
이처럼 '먹고 살아야 하는' 동기로 쪼여가며 특정한 '관점과 입장'을 가졌던 과거 생산자의 위치에서 점차 수준은 오퍼레이터화 되어가지만 태도에는 부동의 권위의 철심이 박혀있는 언론의 손 끝에서 번갯불에 콩볶듯 탄생되는 것이 요즘의 포털을 점거하는 언어 트렌드가 아닌가 한다. (물론 셀레브러티(정치인 포함) 관련 컨텐츠 등 대상의 성격과 주제에 따라 매체만이 접근할 수 있는 부분도 남아있기는 하다. 이 경우, 대중과의 적절한 거리 유지와 생략의 스킬로 운영되는 신비주의 세일즈인 셀레브러티와의 직접적인 컨택은 아무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변한들 대중이 원하는 바도 아닐 것이다.)
요는 말을 볼 게 아니라 구조를 보자는 것이다. 정보화가 심화되고 인터넷 속도가 개선될수록 우리는 주변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 보다는 매체를 향할 것이고, 따라서 셀레브러티의 삶은 더욱 발가벗겨질 것이고, 매체 사장들은 (정치 및 경제와 더불어 상부상조할 때 이윤이 극대화되고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일단 자체 경쟁력, 즉 주목성이 있어야하므로) 생산공정의 개혁과 투자에 주력하기 보다는 최소한의 시간과 비용을 통한 브랜드의 완성을 원할 것이고, 기자들은 (마키아벨리적인 계급상승의 줄타기를 하는 부류 외 노동자로서의 대부분의 기자들은) 기계적인 입출력을 반복하다 쓰러지기 전에는 집에 못 갈 것이며, '나보다 낫다고 믿었던 사람'이 '나랑 똑같거나 더 못한 사람'이었다는 것에 대한, 유도된 호감 또는 배신감을 재생산해내는 대중적 배설의 데이터 업로드 용량을 감당하는 서버 업체는 새로 수주를 따게 될 여지가 생길 것이며....... 생각과 판단과 가치보다 앞서가는 시장을 가동시키는 일련의 먹고 사는 싸이클 안에서의 '재범이'와 '꿀벅지'들은 그래서, 시작은 대상을 향한 욕구가 반영된 유희였겠지만 이제는 '신상 갈아치우기'와 같은 맥락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럼 말만 놓고 보면 어떨까. 병림픽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쇼킹하고 웃기는 기분이 들었다. 올림픽이라는 게 의미가 뭔가. 지구촌 대축전 아닌가. 누구는 우월하고 누구는 떨어지고 이런 개념이 아니라 작금의 병적인 시스템 속에서 다들 자알 놀아나고 있다는 싸카스틱한 관조가 느껴졌다. 건어물녀, 된장녀, 엣지녀, 초식남 등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특정 인간군을 대상화, 그룹화하는 3음절 또는 4음절의 유희는, 거국적이고 대사회적인 함의와 해석을 전제하고 태동하는 게 아니라 학창시절 우리끼리 그러고 놀던 별명짓기와 다를 바가 없다. 오락 추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말이 생기는 것,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통제하겠는가. 게다가 저렇게 심플한 활자 몇 개로 세태 인식을, 최전선에서, 세련되게 하고 있다는 뉘앙스까지 줄 수 있으니 만드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이 어찌 여기서 그칠소냐. 입장과 가치관의 차이로 불편한 부분은 토론의 여지를 남기지만, 이때 '논쟁'의 시작점은 그 치우침을 조장하는 매체의,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는 '먹고사니즘'의 싸이클에 기인한다는 것을 먼저 고려해봤으면 한다.
평생 하고 사는 생각중에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될까. 아니 그런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현상들에는 내가 좋건 싫건 원리가 있다. 생명, 부, 욕구, 에너지의 본질은 밀물과 썰물이며, 한창 밀물이 드는 '병림픽'도 이 정도면 리좀의 현신이라 할 만 하기 때문에 이왕 생각의 씨앗이 던져졌다면, 프레임 바깥의 프레임은 없는지 의심하면서 놀았으면 좋겠다. 컴퓨터 글로벌 소통의 시대에 부를 창출하는 방식이라든지, 이토록 정보가 넘쳐나는데도 개개인이 치우친 의식의 알을 깨는데 걸리는 과정과 시간은 그다지 풍부해지지 않는 것 같다. 12년 노예교육을 통해 먹고사니즘에 귀착되어 막차타고 집에 들어온 개인이 온라인에 성대결 인신공격 레져를 난사할수록 분열되는 것은 영혼이요 윤택해지는 쪽은 구조다. 구조적인 문제를 두고 개인들이 편을 갈라 이전투구하는 것조차도 구조의 일부이자 동력이지만 말이다. 실재하는 인식적인 성폭력의 문제를 포함한 지금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므로 동시대를 함께 살아내며 지켜봐야 할 일이겠지만, 범민족적인 피해의식으로 서로 고통스럽게 물고 뜯으며 먹고 사는 이런 구조 자체에 의문을 갖고 별명을 붙이고 조롱을 하여 그 권위를 조금씩 해체시켜 나감이 차라리 어떠한가. 권위와 구조라는건 개개인이 각성하여 부정하면 끝장이기 때문에 경제와 정치의 떡밥을 동원하여 사고의 틀을 부여하고 먹고사니즘에 천착하며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는 여정을 인생으로 규정하도록 흘러가고 있다. 집단적 시간과 의지의 포커스를 그 다음으로 조화롭게 옮겨가는 일을 동시대에서 경험하고 싶다.
정말 이게 다 뭐라고.
진짜 이 나라 사람들이 고생이 많다.
좀 공기도 좋은 곳이고 해서 산으로 가보지 말입니다.
몸의 정치는 성별을 떠나 이미 인간의 삶과 사고에 너무나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성별/연령대별로 공히 막중한 사회적 압박을 사회적인 방식으로 개선해낼 방법과 의지가 요원하여 부팅과 함께 익명의 성대결 배틀로 소모해내는 지극히 우리나라스러운 접근방식보다는 유행어와 그것이 조성되는 구조와 그것을 인식하는 집단의식에 더 흥미가 있다.
언어라는 건 시대를 겪는 공유수요자들의 사고를 반영하는데 공인 과정에 있어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 과거에는 중앙 매체에서 일반 대중으로 수직하향 전이되는 수순이었다면, 인터넷이 보급되고 계급장 뗀 실시간 상호 피드백이 가능해진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수요자들이 각자의 게토에서 주도적으로 신조 합성어를 만들어 유희하는 것이 어느 정도 서브 트렌드가 되면 미디어 업자들이 그것을 채집하여 메인 트렌드로 인증하는 식의 역순이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비난과 권력의 중심에 있는 미디어. 클릭수만큼 광고가 붙는, 집필이 곧 영업인 미디어 업자들의 시장중심적인 보도방식은 그들 스스로 도덕성까지 개론해가며 자정할 만한 것은 못된다. 자극적인 카피라이팅은 그쪽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능력이다. 매체에 광고가 안 붙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결과 어떤 식으로 개피를 보게 되는가에는 하나의 귀결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옳은 것은 바른 것이 아니라 주목받는 것, 이슈의 전시장이 되는 것, 곧 살아남는 것이다.
이처럼 '먹고 살아야 하는' 동기로 쪼여가며 특정한 '관점과 입장'을 가졌던 과거 생산자의 위치에서 점차 수준은 오퍼레이터화 되어가지만 태도에는 부동의 권위의 철심이 박혀있는 언론의 손 끝에서 번갯불에 콩볶듯 탄생되는 것이 요즘의 포털을 점거하는 언어 트렌드가 아닌가 한다. (물론 셀레브러티(정치인 포함) 관련 컨텐츠 등 대상의 성격과 주제에 따라 매체만이 접근할 수 있는 부분도 남아있기는 하다. 이 경우, 대중과의 적절한 거리 유지와 생략의 스킬로 운영되는 신비주의 세일즈인 셀레브러티와의 직접적인 컨택은 아무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변한들 대중이 원하는 바도 아닐 것이다.)
요는 말을 볼 게 아니라 구조를 보자는 것이다. 정보화가 심화되고 인터넷 속도가 개선될수록 우리는 주변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 보다는 매체를 향할 것이고, 따라서 셀레브러티의 삶은 더욱 발가벗겨질 것이고, 매체 사장들은 (정치 및 경제와 더불어 상부상조할 때 이윤이 극대화되고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일단 자체 경쟁력, 즉 주목성이 있어야하므로) 생산공정의 개혁과 투자에 주력하기 보다는 최소한의 시간과 비용을 통한 브랜드의 완성을 원할 것이고, 기자들은 (마키아벨리적인 계급상승의 줄타기를 하는 부류 외 노동자로서의 대부분의 기자들은) 기계적인 입출력을 반복하다 쓰러지기 전에는 집에 못 갈 것이며, '나보다 낫다고 믿었던 사람'이 '나랑 똑같거나 더 못한 사람'이었다는 것에 대한, 유도된 호감 또는 배신감을 재생산해내는 대중적 배설의 데이터 업로드 용량을 감당하는 서버 업체는 새로 수주를 따게 될 여지가 생길 것이며....... 생각과 판단과 가치보다 앞서가는 시장을 가동시키는 일련의 먹고 사는 싸이클 안에서의 '재범이'와 '꿀벅지'들은 그래서, 시작은 대상을 향한 욕구가 반영된 유희였겠지만 이제는 '신상 갈아치우기'와 같은 맥락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럼 말만 놓고 보면 어떨까. 병림픽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쇼킹하고 웃기는 기분이 들었다. 올림픽이라는 게 의미가 뭔가. 지구촌 대축전 아닌가. 누구는 우월하고 누구는 떨어지고 이런 개념이 아니라 작금의 병적인 시스템 속에서 다들 자알 놀아나고 있다는 싸카스틱한 관조가 느껴졌다. 건어물녀, 된장녀, 엣지녀, 초식남 등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특정 인간군을 대상화, 그룹화하는 3음절 또는 4음절의 유희는, 거국적이고 대사회적인 함의와 해석을 전제하고 태동하는 게 아니라 학창시절 우리끼리 그러고 놀던 별명짓기와 다를 바가 없다. 오락 추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말이 생기는 것,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통제하겠는가. 게다가 저렇게 심플한 활자 몇 개로 세태 인식을, 최전선에서, 세련되게 하고 있다는 뉘앙스까지 줄 수 있으니 만드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이 어찌 여기서 그칠소냐. 입장과 가치관의 차이로 불편한 부분은 토론의 여지를 남기지만, 이때 '논쟁'의 시작점은 그 치우침을 조장하는 매체의,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는 '먹고사니즘'의 싸이클에 기인한다는 것을 먼저 고려해봤으면 한다.
평생 하고 사는 생각중에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될까. 아니 그런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현상들에는 내가 좋건 싫건 원리가 있다. 생명, 부, 욕구, 에너지의 본질은 밀물과 썰물이며, 한창 밀물이 드는 '병림픽'도 이 정도면 리좀의 현신이라 할 만 하기 때문에 이왕 생각의 씨앗이 던져졌다면, 프레임 바깥의 프레임은 없는지 의심하면서 놀았으면 좋겠다. 컴퓨터 글로벌 소통의 시대에 부를 창출하는 방식이라든지, 이토록 정보가 넘쳐나는데도 개개인이 치우친 의식의 알을 깨는데 걸리는 과정과 시간은 그다지 풍부해지지 않는 것 같다. 12년 노예교육을 통해 먹고사니즘에 귀착되어 막차타고 집에 들어온 개인이 온라인에 성대결 인신공격 레져를 난사할수록 분열되는 것은 영혼이요 윤택해지는 쪽은 구조다. 구조적인 문제를 두고 개인들이 편을 갈라 이전투구하는 것조차도 구조의 일부이자 동력이지만 말이다. 실재하는 인식적인 성폭력의 문제를 포함한 지금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므로 동시대를 함께 살아내며 지켜봐야 할 일이겠지만, 범민족적인 피해의식으로 서로 고통스럽게 물고 뜯으며 먹고 사는 이런 구조 자체에 의문을 갖고 별명을 붙이고 조롱을 하여 그 권위를 조금씩 해체시켜 나감이 차라리 어떠한가. 권위와 구조라는건 개개인이 각성하여 부정하면 끝장이기 때문에 경제와 정치의 떡밥을 동원하여 사고의 틀을 부여하고 먹고사니즘에 천착하며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는 여정을 인생으로 규정하도록 흘러가고 있다. 집단적 시간과 의지의 포커스를 그 다음으로 조화롭게 옮겨가는 일을 동시대에서 경험하고 싶다.
정말 이게 다 뭐라고.
진짜 이 나라 사람들이 고생이 많다.
# by | 2009/09/23 13:5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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